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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博雜記(김박잡기)

사시 폐지 유예에 대한 단상

by dockim 2023. 2. 20.

사시 폐지 유예에 대한 단상

 

 

2015년 전공지도 대학원생들에게,

 

그 동안 잘 지냈지요?

기말시험으로 모두 바쁘리라 생각됩니다.

 

예년과 달리 올해는 자기소개서를 이제야 돌려보내는군요.

아마도 하고 싶은 얘기가 있어서 그런 것 같습니다.

바로 사시 폐지 유예 논란입니다.

 

여러분도 잘 아는 것처럼 사법시험은 올해 마지막 1차 시험이 치러졌고, 예정대로라면 내년에 마지막 2차 시험이 끝난 후 역사에서 완전히 사라지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작년에 갑자기 사시 폐지 유예 문제가 제기되었고 그 후 우리 법전원생들은 많은 혼란을 느끼고 있습니다.

 

나나 여러분이나 법학전문대학원은 금수저들이나 가고 또한 금수저가 손쉽게 법조인이 되는 제도라는 잘못된 인식이 우리 사회에 팽배해 있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물론 법전원에 금수저도 있습니다. 법전원은 흙수저만 갈 수 있는 제도가 아닙니다. 재정적 어려움 없이 공부하고 합격할 때까지 응시해서 30대 후반에 사법시험에 합격한 고시생이 흙수저일까요? 나는 지난 8년 동안 넉넉한 가정은 아니지만 법조인을 만들겠다는 온 가족의 희망을 안고 또는 자신의 미래를 위해 법전원에 진학한 일반 가정의 자녀들을 많이 보았습니다. 법전원 또는 사법시험은 결코 금수저 또는 흙수저의 문제가 아닙니다.

 

지난 4월에는 제5회 변호사시험 합격자 발표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있습니다. 변호사시험의 합격률은 전국 법학전문대학원 입학정원의 75%(1,500/2,000)선으로 한다는 기형적인 기준으로 인해 응시자의 개인적인 자질과 능력에 관계없이 입학정원의 25%는 반드시 떨어져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대학을 졸업한 후 5:1의 지원 경쟁률을 뚫고 법학전문대학원에 합격한 인재들이 자기 인생의 중요한 시기의 3년을 투자하고 상당한 비용을 들였는데 말입니다. 시험을 통해 법조인을 선발하는 사법시험과 달리 법학전문대학원은 교육을 통해 법조인을 양성하는 제도이고 변호사가 특권이 아닌 자격인데, 왜 변호사시험은 의사국가고시처럼 운영되지 않는 걸까요?

 

그 결과는 무엇입니까? 법학 공부는 높은 집중력과 많은 학습량이 필요합니다. 변호사시험이 아니어도 3년 동안의 교육과정을 따라가기 위해서는 부지런히 공부해야 합니다. 또한 졸업 후의 취업을 고려해 좋은 학점을 받으려면 치열한 경쟁이 불가피합니다. 그래서 학생들이 정말 열심히 공부하는데, 변호사시험의 기형적인 합격률은 그런 학생들의 목을 꽉 조입니다. 변호사시험의 합격에 대한 공포는 시험에 탈락한 학생들만 느끼는 일일까요? 아닙니다. 대학원생들은 경쟁적인 분위기에서 치열하게 공부하는데, 거기에 더해 변호사시험에 대한 불안과 스트레스와도 싸워야 합니다. 그것도 3년 동안을. 법전원생들이 치열한 경쟁 속에 얼마나 열심히 공부하는지 그리고 변시 합격에 대한 불안과 스트레스가 어떤 것인지를 금수저의 행운 정도로 생각하는 분들은 얼마나 알고 있을까요? 과연 금수저이면 법전원을 무사히 졸업하고 변호사가 될 수 있다고 법전원생들도 생각할까요? 왜 치열하게 공부해서 교육과정을 이수하면 의사가 되는 의대처럼 변호사시험을 운영하지 않는 건가요? 의사국가고시는 반드시 입학정원의 1/4을 탈락시키지 않습니다.

 

이젠 울지도 않는구나.” 올해 입학한 신입생들을 보고 느낀 소감입니다. 앞으로 공부하려면 많이 힘들겠다는 투정도 부리지 않습니다. 신입생들은 이미 자신이 처한 현실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고, 법전원 합격이라는 변호사가 되기 위한 두 개의 관문 중 하나를 통과했다는 축하 인사는 전혀 그들을 즐겁게 하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합격의 기쁨은 입학 전에 있는 오리엔테이션에서나 느끼는 정도라고 할까요? 입학하자마자 생존을 위한 처절한 몸부림만이 느껴집니다. 마치 목숨을 걸고 대련을 하는 훈련 아닌 훈련을 하는 군인처럼. 그렇다면 이렇게 치열하게 공부하는 학생들에게 적어도 현재의 변호사시험과 같은 기형적인 제도를 강요하지는 말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지금 우리 사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은 사시 폐지 유예가 아니라 변호사시험제도의 정상화입니다. 사법시험은 예정대로 폐지되어야 하고 그 대신 변호사시험의 합격자수를 늘려 변호사시험제도를 정상화해야 합니다. 그래야 교육을 통한 법조인 양성이 가능하고 법전원의 교육과정이 원래의 취지대로 운영될 수 있습니다.

 

이제 기말시험도 곧 끝나고 방학입니다.

늘 얘기하는 것처럼 한 일주일 정도는 모든 걸 잊고 자신만의 시간을 갖기 바랍니다.

그리고 사법시험 폐지 유예나 예비변호사시험제도와 같은 또 다른 기형적인 제도가 도입되지 않도록 우리 모두 주의를 기울여야 할 때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여러분이 작년에 제출했던 자료는 내일 학과 사무실에 맡겨 놓을 테니 금요일 이후에 찾아가기 바랍니다.

모두 방학 잘 보내고 건강한 모습으로 신학기에 만납시다.

 

전 지도교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