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학입문

정부형태와 개헌론

dockim 2023. 2. 20. 09:05

정부형태와 개헌론

정부형태와 개헌론.hwp
0.10MB

 

 

지난 20년 이상 교양법률 과목을 수업하면서 1987년 헌법(9차 개정 헌법)에 규정된 정부형태의 개정 논의를 (수업의) 2부 헌법의 기본원리의 한국 헌법의 제정과 개정에서 다루어왔다. 여기서는 그동안 수업에서 얘기해왔던 (헌법전문가는 아니지만 지금까지 1987년 헌법이 시행되어오는 과정을 지켜보고 또한 교양법률 과목을 수업하면서 느꼈던) 정부형태의 개헌론에 대한 단편적인 생각을 글로 정리하였다. (수업시간의 효율적인 운용을 위해 수강생들은 헌법의 제정과 개정을 수업하기 전에 이 글을 미리 읽어 오기 바랍니다.)

 

1. 왜 민주주의인가?

개인적으로는 민주공화국의 시민으로 사는 것보다 절대군주국의 귀족으로 태어났다면 더 좋았을 것이라는 발칙한 상상을 해본다. 멋진 저택에서 고급스러운 옷을 입고 좋은 음식을 먹고 산다면 때깔도 훨씬 좋아지리라. 잘 먹고 잘 살기 위해 민주공화국의 시민처럼 아등바등 살 필요도 없다. 대학 진학은 더 좋은 일자리가 아니라 진정으로 교양을 넓히는 기회로 여겨질 수 있고 넉넉한 여가 시간은 문학과 예술 그리고 스포츠를 제대로 음미할 수 있으리라. 그렇다고 모든 사람의 부러움의 대상이면서 동시에 많은 사람들의 공동의 표적이 되는 군주만큼 삶의 리스크도 크지 않다. 어디 그뿐이랴! 이러한 풍요로움이 나의 후손들에게 대대손손 이어질 것이니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 그러나 문제는 이것이 나의 의지나 능력과는 무관하다는 점이다. 만약 노예로 태어난다면? 생각하기조차 싫은 일이다. 내가 아무리 좋은 체력, 명석한 머리, 예술적 감수성을 가졌더라도 소용이 없다. 게다가 후손들까지 굴레가 씌워진다면? 그렇다고 공산주의는 아닌 것 같다. 스스로가 실패했고 모든 사람에게 1/n의 삶에 만족하라고 강요할 수는 없지 않은가? 그래서 나는 민주주의를 지지한다. 그리고 민주공화국의 시민이어서 행복하다. 인간의 이기심을 인정하고 자신이 선택하는 삶을 살 수 있는 자유가 보장되는 민주주의는 최상의 정치체제는 아니라 하더라도 더 좋은 대안이 없는 한 현실적인 최선책이라고 생각한다.

 

2. 우리 사회에서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하기 위해 필요한 것들은 무엇인가?

내가 학부생일 때 헌법 교수님이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물으시고는 선거제도, 표현의 자유, 정당제도를 필요조건으로 답을 하셨다. 전적으로 공감하였다. 민주주의국가에서 가장 확실하게 정치적 책임을 물을 수 있는 수단은 바로 선거이다. 진정으로 국가와 국민을 위하는 정치인이면 더 좋겠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즉 자신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 나서는 일반적인 정치인이라 하더라도 당선 또는 재선이라는 보상을 통해 국민의 공복으로 제대로 일을 할 수 있게만 한다면 제 역할은 하는 게 아닌가?

다만 선거제도는 결정적인 단점이 있다. 바로 매일매일 선거할 수 없다는 점이다. 그래서 선거와 선거 사이에 표현의 자유와 정당제도가 중요할 역할을 맡는다. 정당은 각종 선거에 후보를 낸다. 그리고 그 후보의 일부가 대통령, 국회의원, 자치단체장과 지방의회 의원으로 선출된다. 정당제도가 확립된 현대의 민주주의 국가에서 무소속의 대통령 후보가 당선되기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우리의 경우 무소속 국회의원의 대부분은 자신이 원하던 정당의 공천을 받지 못한 비자발적인 무소속 의원들이다. 국가의 통치권을 누가 행사하는가? 이렇게 선출된 공무원들이 바로 입법권과 행정권을 행사하고 그들 대부분이 정당에 소속되어 있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민주주의 국가에서 정당제도가 갖는 현대적 중요성은 굳이 설명이 필요 없을 정도이다. 또한 표현의 자유가 얼마나 중요한지는 최근의 최순실 국정농단사건을 통해 촉발된 촛불시위, 대통령의 탄핵과 이어지는 보궐선거를 통한 새로운 대통령의 선출과정을 목격한 모든 국민들이 분명하게 인식하였으리라 생각된다. 진실이 은폐될 때 사회는 병들고 민주주의는 왜곡된다. 또한 표현의 자유는 주권자인 국민과 정치인뿐만 아니라 다원주의 사회의 모든 구성원들이 소통할 수 있는 중요한 통로이다. 따라서 선거제도, 표현의 자유, 정당제도는 민주주의가 원활하게 작동하기 위한 필수적 전제조건이라고 아니할 수 없다.

 

3. 선거제도의 중요성과 장단점을 고려할 때 미국의 선거제도는 모범답안의 하나라는 생각이다.

미국의 대통령과 연방의원의 선출방법은 선거제도의 중요성과 장단점이 잘 반영된 모범적인 사례의 하나라고 생각된다. 미국이 1787년 지금의 연방헌법을 만들 때 13개의 주는 선출방법에 대해 서로 입장이 달랐다. 으레 그렇듯이 각 주에 연방의원의 수를 할당하는데 있어 인구가 많은 주는 인구비례로 연방의원의 수를 정할 것을 주장하였고 인구가 적은 주는 주의 평등에 기초하여 각 주별로 동일한 수의 연방의원을 할당할 것을 주장하였다. 이러한 입장의 대립은 양원제의 형태로 해결되었다.

임기 6년으로 선출되는 연방 상원의원은 주의 평등에 기초하여 각 2명씩 할당되었다. 현재 미국의 주가 50개니까 모두 100명의 상원의원이 있게 된다. 그리고 이런 상원의원은 2년마다 대략 1/3씩 선거를 통해 교체된다. 반면에 임기 2년의 연방하원의원은 인구비례로 각 주별 하원의원의 수가 정해진다. 그리고 각 주는 적어도 1명의 하원의원을 선출할 수 있다. 그래서 인구가 적은 주는 상원의원은 2명인데 하원의원은 1명인 (가분수를 연상시키는) 경우도 있다. 결과적으로 하원의원은 그 수가 1명인 주도 있는 반면에 주민이 가장 많은 캘리포니아주는 하원의원이 50명을 넘는다. 미국의 대통령 선거인단의 총수는 연방상원의원과 연방하원의원의 합계보다 3명이 많다. 그 이유는 주는 아니지만 미국의 수도인 워싱턴 D.C.(각 주에 할당되는 최소 연방의원의 수와 동수인) 3명의 대통령 선거인단을 선출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각 주는 자신들이 선출하는 연방 상원의원과 연방 하원의원의 합과 동수인 대통령 선거인단을 선출한다. 그리고 1회에 한하여 연임이 가능한 4년 중임의 대통령을 선출한다. 대통령과 연방의원의 임기는 모두 2의 배수인데, 미국의 선거는 매 2년마다 동시에 전국적인 선거를 치르는 방식으로 치러진다. 그러니까 2016년 선거에서 대통령을 포함하여 하원의원 전부 그리고 대략 1/3의 상원의원이 선출되었고 2020년에도 마찬가지로 진행된다. 그리고 대통령을 선출하는 2016년과 2020년 선거 사이에 하원의원 전원과 약 1/3의 상원의원을 선출하는 이른바 중간선거2018년에 치러진다.

미국에서는 매 2년마다 전국 규모의 선거가 치러지고 매 4년마다 대통령을 선출하는 보다 큰 선거를 진행함으로써 매일매일 선거할 수 없다는 선거제도의 단점을 양적 그리고 질적으로 보완하였다. 우선 선거 간격이 적절하다. 거기에 센박(대선)과 여린박(중간선거)의 박자까지 더해졌다. 4년의 임기(선거)는 간격이 너무 길고 1년의 임기(선거)는 너무 짧다. 공부도 하고 시험을 봐야지 매일매일 시험만 볼 수는 없지 않은가?

미국의 선거방식은 우리와도 무관하지 않다. 연식이 있는 분들은 직접 목격하기도 했던 것처럼 노태우 대통령 때부터 (임기 2년이 지나면) 야당과 재야에서는 끊임없이 중간평가를 요구했었다. 대통령으로 선출되면 임기 5년이 보장되는 체제이지만 이러한 정치적 요구는 당시의 대통령을 수세로 모는데 그 나름의 효과가 있었다. 역시 법과 정치는 다르다. 미국의 중간선거는 대통령에 대한 일종의 중간평가가 아니겠는가? 그리고 선거의 주기를 (센박-여린박-센박-여린박의 방식으로) 4년에서 2년으로 단축하였다. 매일매일 선거할 수 없다는 선거의 단점을 보완하는 동시에 잦은 선거의 시행도 방지하였다.

우리도 미국의 선거방식을 부분적으로 도입하였다. 바로 국회의원선거와 지방선거의 하모니이다. 우리의 국회는 양원제가 아니라 단원제이고 임기는 국회의원이나 자치단체장 또는 지방의원 모두 4년이며 미국과 달리 매 4년마다 전원을 새롭게 선출한다. 그러나 2016년에는 국회의원을 선출하고 2018년에는 지방선거를 실시함으로써 매 2년마다 전국적인 선거가 진행된다. 이것은 우연이 아니다. 선거간격을 2년으로 하기 위해 제1회 지방선거에 한해 임기를 3년으로 하지 않았던가?

미국의 대통령 임기는 4년 중임제이다. 원래는 3회 이상도 가능했었는데, 네 번째 집권에 성공한 프랭클린 루즈벨트 대통령이 취임 초에 사망하면서 1회에 한해 연임이 가능하도록 헌법이 개정되었다. 4년 중임제는 재선에 도전하는 현직 대통령의 프리미엄을 고려하면 대통령의 중임 가능성이 높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중임을 목표로 국정운영이 이루어지며 성공하는 경우 중장기적인 정책의 수립 및 집행이 가능해진다. 다만 입법권이나 사법권과 달리 다양한 이익집단의 이해관계 조정이 필수적인 행정권의 특성과 (정치현실과 정반대로) 유권자의 대통령에 대한 기대수준이 높은 우리나라에서 4년 중임의 대통령중심제를 도입하는 경우 초기에는 오히려 대통령의 재선이 쉽지 않을 수 있다.

 

4. 정부형태의 개헌론에 대해서는 4년 중임 정부통령 대통령중심제(순수대통령제)로의 개헌이 아니면 현행 유지가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민주주의국가의 대표적인 정부형태로는 의원내각제와 대통령중심제가 있다. 의원내각제는 행정부가 이원화되어 있고 입법부와 행정부의 관계가 긴밀하다. 입헌군주가 존재하는 경우에는(예를 들어 영국 또는 일본의 경우) 군주가 그리고 존재하지 않는 경우에는(예를 들어 독일 또는 이탈리아의 경우) 선출된 대통령이 (상징적인) 국가원수가 되고 수상은 정부수반이 된다. 따라서 국가원수와 정부수반이 분리되어 있고 이런 점에서 행정부가 이원화되어 있다. 그러므로 국가원수이면서 동시에 정부수반인, 즉 행정부가 일원화된 대통령중심제의 대통령과 구분된다. 따라서 의원내각제의 대통령과 대통령중심제의 대통령은 질적으로 다르다. 그러므로 우리나라의 경우 의원내각제를 채택했던 제2공화국 헌법에서의 대통령을 현재의 대통령과 동일선상에서 비교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오히려 제2공화국 헌법에서는 수상이 대통령중심제 대통령의 적절한 비교 대상일 수 있다. 행정권을 행사하는 최고의 의사결정권자는 대통령중심제의 대통령 또는 의원내각제의 수상이기 때문이다. 한 예로 전형적인 의원내각제의 정부형태에서 정상회담에 참석하는 당사자는 군주 또는 (의원내각제의) 대통령이 아닌 수상이다. 외교관계에서 자국을 대표하는 최고의 국가기관은 수상이기 때문이다. (지금부터 대통령은 별도의 설명이 없는 한 대통령중심제의 대통령을 일컫는 의미로 사용한다.)

의원내각제의 정부형태에서는 총선을 통해 의회가 구성된 후에 과반수이상의 의석을 차지하는 단독정당 또는 연립정당이 정부(행정부)를 구성한다. 그러니까 과반수이상의 의석을 차지하는 단독정당(예들 들어 영국 또는 일본의 대부분의 경우) 또는 연립정당(예를 들어 독일 또는 이탈리아의 경우)은 입법권뿐만 아니라 행정권을 갖게 된다. 따라서 수상은 안정적인 의회의 지원과 협력 속에 국정을 운영한다. 수상의 의회해산권과 의회의 내각불신임권은 의원내각제에 고유한 견제와 균형의 원리이다. 이원집정부제가 아닌 대통령중심제에서 대통령이 의회해산권을 갖는 것은 정부형태의 원리에 맞지 않다. 수상의 정책에 대해 야당뿐만 아니라 여당에서도 반대의 목소리가 나오는 경우 수상은 의회해산이라는 정면승부로 정치상황을 돌파하려고 할 수 있다. 새로운 의회의 구성을 위해 치러지는 선거를 통해 수상은 자신의 정책에 대한 국민의 심판을 받는다. 여당이 선거에서 승리하면 수상은 자신의 정책에 대한 국민의 신임을 얻는 것이고 패배하면 자연스럽게 의회의 과반수이상의 의석을 차지하는 새로운 단독정당 또는 연립정당이 수상과 새로운 내각을 구성하게 된다. 따라서 4년 또는 5년의 임기로 선출되는 의회 의원의 임기는 절대적으로 보장되는 것이 아니다. 이런 점에서 임기가 보장되는 대통령중심제의 의회 의원(우리의 국회의원)과 다르다.

대통령중심제는 대통령과 의회가 각각의 선거를 통해 선출되며 선거를 통해 당선된 대통령과 의회에게는 각각의 민주적 정당성이 부여된다. 의회해산은 가능하지 않으며 대통령과 의원은 각자의 임기가 보장된다. 따라서 의회에 기반하여 내각(행정부)이 구성되는 의원내각제와 달리 대통령과 의회는 독립적이다. 물론 정당제도를 통해 대통령과 의회(또는 여당)가 연결되지만 의원내각제의 수상과 의회만큼 긴밀하지 않다. 의원내각제와 달리 여소야대의 상황(분점정부, divided government)은 언제나 가능하다. 여소야대의 상황에서 대통령에 대한 의회의 견제는 강력하다. 대통령의 원활한 국정 수행을 위해서는 의회(또는 야당)와의 소통과 협력이 필수적이다. 이런 상황은 미국에서 드물지 않게 볼 수 있고 우리도 마찬가지이다.

서구자본주의국가의 대부분의 정부형태는 의원내각제이고 대통령중심제를 채택하고 있는 대표적인 국가로는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것처럼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대통령중심제의 원조인 미국이 있다. 사실 유일한 경우라고 할 수 있는데, 당시에 이처럼 독창적인 정부형태를 창안하여 200년이 넘게 성공적으로 운영하고 있는 미국의 국가적 역량은 평가할 만하다. 그런 미국보다 우리가 갖고 있는 대통령선거제도의 장점이 있는데, 그것은 대통령선거인단이 아니라 국민이 직접 선거를 통해 대통령을 선출한다는 점이다. 미국이 간접선거를 택한 것은 당시의 정치적 상황 때문이라고 할 수 있는데, 대통령선거제도의 이상적인 형태는 역시 국민에 의한 대통령의 직접선거라고 할 수 있다.

그 밖의 정부형태로 프랑스의 이원집정부제가 있다. 프랑스의 1958년 제5공화국 헌법(현행 헌법)에서 채택한 이원집정부제의 정부형태는, 요즘 젊은이들의 말로 표현하면, 대통령중심제인 듯 대통령중심제 아닌 대통령중심제 같은 정부형태라고 할 수 있다. 물론 프랑스에서 (여러 번의 헌법 개정이 있었지만) 수십 년 동안 유지되어온 정부형태라는 점에서 선택할 수 있는 정부형태의 하나라고 원론적으로는 말할 수 있지만, 마찬가지로 수십 년 동안 대통령중심제의 근간을 유지해온 한국에서 정부형태를 이원집정부제로 변경하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이원집정부제는 한국의 전문가에게도 생소하고 그동안 학계의 관심도 전혀 끌지 못했던 정부형태이다. 대통령은 평시에 외교와 국방에 대한 권한을 행사하고 수상은 내치를 담당하다 국가비상시에는 국가긴급권에 의거하여 행정권을 전적으로 대통령이 행사하는 정부형태라는 일반인의 상식과 크게 차이가 없다. 일반인뿐만 아니라 관련 전문가들도 이원집정부제를 잘 알지 못한다. 그런데 지금 국내 정치권 일부에서는 이원집정부제를 강력하게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주장이 얼마나 국민의 공감을 얻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한 예로 2017315일 자유한국당, 국민의당, 바른정당은 4년 중임 분권형 대통령제 도입을 골자로 한 헌법 개정안에 잠정 합의하고 59일의 대통령선거 때 개헌을 위한 국민투표를 함께 실시하는 방안을 발표했었다. 그리고 그뿐이었다. 그 후 대통령선거가 실시될 때까지 국민투표를 함께 실시하기 위한 이렇다 할 조치는 없었다. 정말 무책임한 모습이 아닐 수 없다.

대통령의 탄핵으로 (짧은 기간에) 치러지는 보궐선거에서 (충분한 사회적 논의도 없이) 개헌을 위한 국민투표를 함께 실시한다는 발상 자체가 매우 정치적이고 비현실적이다. 그런 그들이 집요하게 분권형 대통령제로의 개헌을 주장한다. 그들의 목적이 자신들의 정치적 이기심을 충족시키기 위한 것인지 아니면 진정으로 국민과 국가의 백년대계를 위한 것인지를 유권자들은 진지하게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우리의 미래와 직결된 중요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이원집정부제 또는 분권형 대통령제가 정말 우리 사회에 적합한 정부형태일까? 정치권 일부에서 이렇게 집요하게 분권형 대통령제를 주장하는 이유와 그 구체적인 내용을 깊이 있게 분석하여 그 문제점을 국민에게 제대로 알릴 필요가 있다. 이러한 정치권의 주장에는 국민을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해 극복이라는 프레임에 가둬 호도하는 명분 뒤에 숨은 분명한 이유와 목적이 있다고 판단되기 때문이다. 경제의 독과점도 문제이지만 정치권력의 독과점은 더 큰 문제이다. 우리 사회의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한 수단까지 상실하기 때문이다.

이원집정부제 또는 분권형 대통령제로 개헌하느니 차라리 현행 체제를 당분간 유지하는 게 낫다. 헌법의 개정이 개선책이어야지 개악이 되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이원집정부제가 행정권을 대통령과 수상에게 나누는 것이니 이 점만 생각한다면 의원내각제의 수상이나 대통령중심제의 대통령보다 행정부가 약하다고 할 수 있다. 이는 양원제보다는 단원제의 의회가 그리고 헌법재판소가 별도로 있는 것보다는 위헌법률심사권도 대법원이 갖는 사법부가 더 강력한 입법권과 사법권을 각기 행사하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그러나 대통령과 수상의 권한을 명확하게 나누는 것이 현실적으로 어렵고, 입법부나 사법부와 달리 행정부는 국정 전반에 대한 상시적인 결정이 이루어지는 정책의 수립 및 집행 기관이라는 점을 고려할 때 대통령과 수상이 대립하는 경우 (의회와 대통령이 대립하는 경우보다) 그 파장은 더 크고 직접적일 수 있으며, 대통령과 수상이 동일한 정당 또는 (보수 또는 진보) 진영에 속하는 경우 행정권의 분권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점을 생각할 필요가 있다.

프랑스가 (진보 또는 보수의) 상이한 진영의 대통령과 수상이 행정부를 구성하는 몇 번의 (좌우) 동거 정부(cohabitation)를 경험한 후에 그 문제점을 깨닫고 대통령의 임기를 7년에서 5년으로 단축하는 2000년 헌법 개정을 통해 하원의원의 임기와 일치시켜 2002년 선거부터는 (동시가 아니라) 같은 해에 대통령선거와 하원의원선거가 치러지게 함으로써 의도한대로 그 때부터 지금까지 더 이상 동거정부가 출현하고 있지 않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요컨대 프랑스의 선택은 대통령과 수상이 오히려 동일한 정당 또는 적어도 동일한 진영에서 나오는 것이니 이원집정부제 또는 분권형 대통령제를 주장하는 한국의 일부 정치권은 이를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그리고 프랑스의 이원집정부제는 의원내각제로 운영되어오던 정부형태에 대통령중심제적 요소를 더한 것이지 대통령의 권한을 약화시키기 위해 대통령중심제로 운영하다 의원내각제적 요소를 가미한 것이 결코 아니다. 또한 국가의 최종적인 의사결정은 대통령중심제의 대통령 또는 의원내각제의 수상처럼 1인이 (주도적으로) 하는 것이 권한의 다툼을 방지하고 책임의 소재를 명확하게 하는 이점이 있다.

가장 우려되는 부분은 이원집정부제로 헌법을 개정한 후 시행하는 과정에서 앞서 지적한 문제점이 현실화되는 경우 그 사회적 비용과 혼란이 크다는 점이다. 즉 한국의 정치 현실에서 우리에게 생소한 이원집정부제의 선택은 리스크가 너무 크고 새로운 혼란의 시발점이 될 수 있다. 국회의원직 유지에 전전긍긍하면서 대통령의 눈치를 보며 따라가는 적지 않은 국회의원들의 입지와 역할을 강화하려다 소탐대실할 수 있다. 이원집정부제가 정녕 국민과 국가의 백년대계를 위한 것인지 아니면 정치인들 자신을 위한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이원집정부제를 새롭게 시행해보고 안 되면 바꾸기에는 기회비용이 너무 크다. 우리는 실험용 동물이 아니다. 이원집정부제가 실패하는 경우 발생하는 사회적 비용은 고스란히 국민과 국가가 떠안아야 하는데, 하나의 새로운 시도로서 우리가 감당하기에는 그 비용이 너무 크다.

분권형 대통령제는 대통령중심제가 아니라 이원집정부제의 또 다른 명칭에 불과하다. 우리나라처럼 개명이 효과를 보는 나라가 또 있을까? 이름만 바꿨을 뿐인데 . . . . 분권형 대통령제라는 용어는 대통령제라는 단어를 사용해 마치 대통령중심제의 한 형태인 것 같은 인상을 주면서 동시에 분권형이라는 수식어를 통해 자신들이 설정한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해 극복이라는 프레임이 해소되는 것 같은 환상을 갖게 하여 국민을 호도할까 염려된다. 가장 우려되고 경계하는 부분이다. 이원집정부제에 대한 생소함과 거부감을 없애면서 동시에 자신들이 설정한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해 극복이라는 프레임을 분권형 대통령제라는 말 한마디로 해결하니 정말 놀랄만한 편법과 꼼수의 하모니가 아닐 수 없다. 정말 이원집정부제 또는 분권형 대통령제를 지지하는 사람들에게 묻고 싶다, “이원집정부제 또는 분권형 대통령제가 무엇인지 아냐?”.

정경유착과 권력형 비리가 단순하게 정부형태를 바꾼다고 해결될 문제인가? 우리는 미국의 대통령중심제를 제왕적 대통령제라고 하지 않는다. 그리고 입법권까지 거머쥔 의원내각제의 수상이 4선을 바라보는 것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국회의원들이 제 역할을 다하고 언론이 권력의 눈치를 보며 국민의 판단을 흐리지 않았다면 최순실 국정농단사건 같은 일이 일어날 수 있었겠는가? 박경정이 대한민국의 권력서열 1위가 최순실이고 3위가 대통령이라 할 때 그 말을 믿은 국민이 얼마나 되었을까? 그리고 청와대 문건 유출 사건으로 수사를 받던 최경위가 진실을 은폐하려는 부당한 외압에 굴복하지 않고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된 일은 누가 책임을 지는가? 말로는 국가의 미래를 염려하고 국가와 민족을 위한다고 말하면서 실제로는 국가와 민족이 아니라 대통령에 충성할 것을 요구하고 자신과 이너서클(inner circle)의 이익을 도모하고 영구화하는데 혈안이 되어 자신에 반대하거나 부정적인 그룹을 종북으로 일방적으로 매도하는 보수 속에 섞여 있는 가짜 보수들에게 국민들은 언제까지 변함없는 지지와 성원을 보낼 것인가? 이런 문제가 제 역할을 못하고 대통령의 눈치를 보면서 따라가는 그러한 전근대적인 많은 국회의원들 자신 때문이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고, 오히려 이를 빌미로 자신들의 정치적 기반을 넓히려고만 하는가? 정경유착이나 권력형 비리는 (정부형태가 아니라) 국회의원들이 자신의 본분을 다하고 언론이 살아 있어 국민의 관심과 지지 속에 우리 사회의 전근대성을 극복하여 합리주의가 정착될 때 비로소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닌가? 이에 대한 성숙한 시민의식과 유권자들의 냉철한 판단이 요구된다.

의원내각제는 합리주의가 정착된 서구자본주의국가의 지배적인 정부형태이다. 그러나 한국사회가 의원내각제를 선택하기 위해서는 우선 전근대적인 정치형태를 극복할 필요가 있다. 여야의 대표적인 정당들의 주요기반의 하나가 지역이고 이런 상황이 극복되지 않은 상태에서 특정 지역의 후보 공천은 국회의원 선거 또는 지방선거에서 당선의 보증수표와 같다. 게다가 특정 지역에서 지배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정치인이 당권을 쥐고 공천권을 후보 길들이기나 자기사람 만들기의 수단으로 이용할 때 공천권은 특정인의 정치력을 공고히 하고 영속화하는 수단으로 전락하게 된다. 즉 당이 아닌 인()의 지배가 부활한다. 우리는 지난 수십 년간 이런 상황을 목도해왔고 이것이 바로 우리의 정치현실이다. 따라서 당내 민주화와 공정하고 합리적인 민주적 절차에 의한 공천의 실현이 의원내각제 도입의 선결과제이다. 또한 수상은 행정권뿐만 아니라 입법권도 거머쥔다는 점에서 대통령중심제의 대통령보다 권한이 강력할 수 있고 연임을 특별히 제한하지 않는 경우 4선 또는 그 이상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현재의 의원내각제적 요소가 가미된 대통령중심제를 4년 중임 정부통령 대통령중심제로 전환하는 것은 대통령중심제의 원형으로의 회귀이다. 따라서 국무총리제도, 국회의원의 국무총리 또는 국무위원 겸직, 국회의 국무총리 또는 국무위원의 해임건의권과 같은 의원내각제적 요소가 제거된다. 도대체 대통령중심제에서 국회의 국무총리 또는 국무위원의 해임건의권이라니 납득하기 힘들다. 대통령중심제에서 모든 행정권의 시작과 끝은 대통령이고 공과도 모두 대통령의 몫이다. 국무총리나 국무위원의 겸직 금지도 제 역할에는 관심이 없고 자신의 영향력 확대에만 몰두하는 그러한 전근대적 국회의원에게는 반갑지 않은 일일 것이다. (물론 장관의 임기는,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 대통령의 임기와 함께 할 필요가 있다. 회전문 인사 소리를 듣느니 (청와대가 아니라) 장관이 실질적으로 부처를 장악해서 대통령을 보좌할 수 있도록 임기가 사실상 보장될 필요가 있다.) 이러한 대통령중심제는 중임제를 통해 재선이라는 국민의 중간평가를 거쳐 최대 8년까지 집권이 가능하게 함으로써 보다 안정적이 토대에서 중장기적인 정책의 수립 및 집행이 가능해질 뿐만 아니라 대통령 궐위 시에 권한대행이 아니라 부통령이 대통령 직을 승계함으로써 국정 공백 없이 보장된 임기동안 대통령의 직무수행이 안정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다. 또한 21세기에 두 번이나 발생했던 대통령의 탄핵 정국은 대통령의 직무정지 또는 새 대통령의 선출까지 국정 운영에 커다란 어려움을 겪었던 우리에게 국무총리가 아니라 부통령이 필요한 이유를 실감하게 하였다. 게다가 순수한 대통령제의 도입은 상대적으로 리스크가 적다. 우리 국민에게 가장 익숙한 정부형태이기 때문이다. 한국의 정치상황에서 한 가지 흥미로운 것은 정부통령제의 도입이 각 정당의 지역기반에 어떤 영향을 주는가이다. 지역주의를 완화하고 보수, 중도, 진보의 진정한 정책 대결을 통해 대통령을 선출하는데 정부통령제가 어떤 영향을 줄지 관심거리가 아닐 수 없다.

순수대통령제로의 개헌은 대법관의 임기 연장 문제를 제기한다. (또한 헌법재판관의 경우에도 유사한 문제가 발생한다.) 바로 사법권의 독립 때문이다. 미국의 대법관은 종신직이어서 문제가 되지 않지만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현재 임기가 6년인데, 순수대통령제의 경우 8년까지 대통령의 임기가 연장될 수 있기 때문에 대법관의 임기가 연장되지 않으면 중임에 성공하는 대통령은 재임 중에 모든 대법관을 새롭게 임명하는 기회를 갖게 된다. 이는 사법권의 독립 측면에서 문제가 된다.

그밖에 30년만의 개헌 논의이기 때문에 기본권을 포함한 헌법의 다양한 분야에 대한 개정요구가 분출할 수 있다. 따라서 정치권에서 논의의 대상이 어느 정도 정리가 되면 개헌의 범위를 정해 사회적 합의를 도출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이번 기회에 대한민국의 수도는 법률로 정할 수 있다.”는 규정을 헌법에 두어 행정수도 이전의 문제를 종결지으면 어떨까?

 

5. 선거주기를 일정하게 유지하는 것은 의원내각제나 이원집정부제 또는 분권형 대통령제가 아니라 대통령과 의원의 임기가 보장되는 대통령중심제에서 의미가 있다.

순수대통령제를 도입하더라도 대통령선거를 국회의원선거와 지방선거 중 어느 선거와 동시에 치를지에 대한 선택의 문제가 남아 있다. 일반적으로 대통령의 지지율은 행정권의 특성상 시간이 지날수록 오르기보다는 내려가기 쉽다. 국회의원 선거의 이전 결과들을 보면 여당이 좋은 결과를 냈을 때가 과반수 의석을 약간 상회하는 수준이다. 따라서 지방선거와 대통령선거를 동시에 실시하는 경우에는 2년 뒤에 치러지는 국회의원 선거에서 구조적으로 여소야대 또는 분점정부가 초래될 가능성이 높다. 또한 국회의원과 대통령이 독립적으로 선출되기 때문에 양자가 대립하는 경우에는 국정이 마비된다. 따라서 대통령이 안정적인 정치적 기반을 토대로 국정을 운영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국회의원선거와 동시에 실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순수대통령제에서 대통령에 대한 강력한 견제수단의 하나는 역시 임기에 의한 제한과 재선이라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이렇게 되면 우리도 매 2년마다 센박(대통령선거와 국회의원선거)과 여린박(지방선거)의 선거가 전국적으로 치러지게 되고 지방선거를 통한 대통령의 중간평가가 가능하다. 야구에서 견제구는 주자를 아웃시키는 게 아니라 주자를 루에서 멀리 이탈하지 못하게 하는 견제 그 자체에 의미가 있다고 할 때 지방선거는 이런 수단으로 적절하다고 생각된다. 이러한 선거주기는 임기가 있지만 보장되지 않는 의원내각제에서는 의미가 없다. 그러나 의원내각제에서 선거주기는 의회가 자주 해산되지 않는 한 문제되지 않을 수 있다. 수상의 임기가 의원과 연동되어 있기 때문이다. 흥미로운 것은 이원집정부제인데 대통령을 강력하게 견제하려고 한다면 이원집정부제에서 대통령과 의원의 임기를 맞출 필요가 없다. 그런데 정작 프랑스는 2000년에 헌법을 개정해서 2002년 선거부터 대통령선거와 하원의원선거를 같은 해에 치르고 있으니 불가사의한 일이 아닐 수 없다.

 

 

2017. 5. 30.

 

경대사람 경대사랑